일체유심조라는 말도 있지만, 가만보면 사물이나 사회에 대한 우리 생각의 상당부분은 의인화를 통해 진행되는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나같은 사람으로 바꿔 생각할 일이 전혀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국가'가 마치사람인 것처럼 그려지는 수도 많고, '중산층'도 그렇다. 유권자나 국민의 경우처럼 분명히 사람이긴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가르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어떤 특정한 사람인양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의인화가 문제를 만든다면 그것은 사람(나)이 아닌걸 사람(나)처럼 봤다는걸 잊는데에서 시작할 것이다. 가령 전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을 병?문제?로 보기도 한다. 이런 착각은 오늘 읽은 프레시안칼럼처럼 'PK의 정신분열'과 같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PK가 얼른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치료법'까지 제시된다. 그러나 PK는 고쳐먹을 마음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기어이 갖다붙이자면, PK의 구성원들 중 기억할건 기억하고 '올바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할텐데...쯤이 되겠다. 그리고 한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것과 PK건 대한민국이건 많은 사람들의 성향분포?구성분포?가 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물고기떼. 출처: www.2kiwis.co.uk
잠늠은 이런 착각을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들에서도 가끔 보는데, 종(즉 인류)을 개체(즉 개인)가 투사된, 그래서 개체와 유사한 것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가령 '적자생존'을 그런식으로 오독하면 개체대 개체의 경쟁의 필연성이나 심지어는 인종주의나 우생학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적자생존은 '적합'의 기준을 입증하지 않는 한, 혹은 반대로 전적으로 통계적인 과정에다 의미를 덧씌운 것으로 보는 한, 사실상 '살아남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라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하나마나한 소리라 잠늠은 여기는 편이다.
진화는 개체가 하는게 아니라 종이 하는 것이고, 개체의 성장이나 발전의 합은 진화가 아니다. 설령 종이나 사회가 모종의 유기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유기체로 기능하는 방법이 각각의 사람이나 개체가 유기체인 방법과 반드시 같은 것이어야 할 이유는 난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각성이나 개과천선이 사회변동과 반드시 같은건 아닐거라 난 본다. 가령 내가 이렇게 변해도 어딘가에 저렇게 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체는 그대로다. 그리고 그것이 익명성의 본질이다.
만약 의인화가 문제를 만든다면 그것은 사람(나)이 아닌걸 사람(나)처럼 봤다는걸 잊는데에서 시작할 것이다. 가령 전혀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것을 병?문제?로 보기도 한다. 이런 착각은 오늘 읽은 프레시안칼럼처럼 'PK의 정신분열'과 같은 의인화된 표현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PK가 얼른 '마음을 고쳐먹어야 한다'는 '치료법'까지 제시된다. 그러나 PK는 고쳐먹을 마음을 가진 존재가 아니다. 기어이 갖다붙이자면, PK의 구성원들 중 기억할건 기억하고 '올바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더 높아져야 할텐데...쯤이 되겠다. 그리고 한사람이 마음을 고쳐먹는것과 PK건 대한민국이건 많은 사람들의 성향분포?구성분포?가 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다.

물고기떼. 출처: www.2kiwis.co.uk
잠늠은 이런 착각을 진화론에 대한 이야기들에서도 가끔 보는데, 종(즉 인류)을 개체(즉 개인)가 투사된, 그래서 개체와 유사한 것으로 보게되는 것이다. 가령 '적자생존'을 그런식으로 오독하면 개체대 개체의 경쟁의 필연성이나 심지어는 인종주의나 우생학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적자생존은 '적합'의 기준을 입증하지 않는 한, 혹은 반대로 전적으로 통계적인 과정에다 의미를 덧씌운 것으로 보는 한, 사실상 '살아남는 것들만 살아남는다'라는 동어반복에 가까운 하나마나한 소리라 잠늠은 여기는 편이다.
진화는 개체가 하는게 아니라 종이 하는 것이고, 개체의 성장이나 발전의 합은 진화가 아니다. 설령 종이나 사회가 모종의 유기체라 하더라도, 그것들이 유기체로 기능하는 방법이 각각의 사람이나 개체가 유기체인 방법과 반드시 같은 것이어야 할 이유는 난 모르겠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각성이나 개과천선이 사회변동과 반드시 같은건 아닐거라 난 본다. 가령 내가 이렇게 변해도 어딘가에 저렇게 변하는 사람이 있으면 전체는 그대로다. 그리고 그것이 익명성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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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들러주셧네요 반갑슴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