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있는데, 인제 뭔가 적절한 말?표현?이 생각낫다. 사진이 시처럼 은유metaphor의 힘?을 가지게 되는 경우는 피사체가 걍 사진으로 사진속에 남은, 그런 경우에 한하는것 같다...는 것이다.(음...말이
되나 모르겟군. 안됨 말고...-_-a) 최소한 내겐 그렇다. 그렇지않은 사진은 내겐 사진이 아니라 하나의 공예품으로 보인다.
물론 사진이 공예품으로서 '아름다울'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사진에는 그렇게 명시적으로 압도적으로
남아있는 '시간'이 공예품속에서는 실종되어 버리고 없다. 물론 공예품속에는 또다른 새로운 '시간'이 탄생하고 남아있다는 주장도 얼마든지
가능하겠고 또 사실이겠다. 그러나 같은 이름이지만 두 '시간'의 맥락은 살짝 다른 결을 타고 있다는것도 사실이겟다.
이
어슷한 맥락은 순간..과 지속..의 어슷함 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이와 연관해서 점(순간)을 아무리 모아도 선(시간)이 되지
않고 선을 아무리 모아도 면이. 또 비슷하게 공간 내지 물체들의 근본속성인 연장extension이 되지는 않는다, 운동 내지
변화, 시간이 들어와야 선(면, 또 공간-연장)이 된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도 있겠다. 가령 제노의 역설은 이 어슷함을 구분하지
않고 걍 무심코 따라가면 발생하는 것이고, 미적분은 이런 착각을 살피고 피하면서 움직임-변화를 다룰?바라볼?수 있는
<한> 방법을 발견한 것이라 하겠다.
더 따지자면, 점이나 순간은 관념상의 존재?개념?일 뿐, 실재하지
않는다. 솔찍히 생명을 포함해서 변하고 움직이는 것이
의무?존재이유?인 것들에게 현재란건 없다. 미래와 과거, 즉 (뭔지 모르지만) 가능한 변화와 실제로 일어났던 변화, 만
'있다'. 이쯤되면 눈치빠른 분들께서는 의학이나 생물학같은 아리송한?^^ 과학은 물론이고, 화학이나 심지어 물리같은
하드코어?과학조차도 따지자면 은유와 전혀 무관한 것일수
없음을 감지하시게 될 것이다. (대책없이 골치아파지기 전에 대충 이쯤에서 관두자 ^^;;;)
할
튼, 그래서, 솔찍히, 사진의 '순간' 이라는 것도 사실은 따지자면 짧은 동안이지만 지속되어 중첩-압축-적분된거랄찌,
그런거다. 사진기의 셔터 내지 감광장치의 노출감도 뭐 그런 (사진을 찍는 내가 아닌) 사진을 규정하는 물질적 한계들?속성들?에
따른 중첩-누적의 표현 또한 사진의 한 본질을 이루고, 사진으로 하여금 미분적시선과 적분적시선을 아우르는 다양하고 미묘한 은유를
통해 세계와 그 안에 내재한 시간을 이야기할수 있도록 해 준다. 한 좋은 아니 뛰어난 예로, 얼마전 전시회를 했던
김아타의 사진들이 생각난다.
ⓒ Atta Kim 김아타
이상, 뭐 대충 이런 비슷한거이가 오늘 한겨레 구본준기자의 사진-건축 블로그에서 만난
세바스티앙 살가두 Sebastião Salgado(1944~)의 사진을 보고 그의 사진을 뒤적뒤적 찾아보다가 든 쓰잘데업는 잡스런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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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에 바로 이 시간에 대한 글을 두편 썼슴다, 물론 조형예술과 관련해서요. 노네님과 삘이 통했나봐욤^^ 운동과 변화야말로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하는 현상이어서 언제부턴가 조각이 움직이기 시작했죠, 그림은 움직이는 그림으로 비디오아트로 들어오구요. 시간의 흐름passages of time을 더이상 간접적으로 혹은 은유적으로 재현하지 않겠다는 건데, 역사개념이 빠진 시간과정만을 정신없이(=현란하게) 구체화한(embody) 키네틱아트는 제겐 좀 별로여서 시간성과 역사성을 둘다 다룬 작품들에 대해서 좀 썼는데요... 암튼 점과 순간, 선과 시간은 말씀하신대로 추상적인 개념화라고 봄다(물론 선의 시간이라는 걸 생각하는 것은 무지 흥미로운 일이지만요). 사진은... 뭐랄까요 저에겐 순간의 죽음임다... 시간개념과 별 관계없이 개인적으로 살가도의 사진은 무지 불편합니다. 구기자님의 기사를 읽었는데, 글쎄요, 그렇게 감동적으로 보는 이들이 많죠. 근데, 저는 그 처참한 상황을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포착한 것이 여엉 매너리즘으로 보여서 오히려 반감이 느껴질 정도예요. 특히 금광채취하는 사진에 사용된 종교적인 이미지(거대한 purgatory)나 아름다운 인체나 포즈로 다루어진 사람들까지... 살가도와 죤 버저가 함께 만든 비디오도 보았는데 그래도 여엉 찝찝해서 아프리카 사진 전 볼까말까 하고 있슴다.
... 시간이라는 말이 우리말로 하면 때-사이, 공간이라는 말이 빔-사이라는 걸 생각하면 동양사상의 깊이를 한번 더 느끼게 된다는.
역시 예리하시네요^^ 저는 살가두사진을 보고 뭐랄까 사실성을 가리는 조형성이랄까, 내식으로 말하면 장식성?이 느껴졌는데 정말 그건 일종의 매너리즘이라 할 수 있겠군녀+_+
이건 걍 별 상관없는 사족인데,(사진을 계속 우기는건데^^,) 변화..는 좀 다릇치만 (반복을 포함한) 운동..은 물건들의 정체성을 이루기도 하는데, 가령 쥐불놀이 하는걸 장노출로 찍으면 원이 나오는 거나, 분자들이 모여서 연장을 갖는 '의자'를 이루는거나 뭔가 공통인 부분이 있지요.
아마 그건 사진의 시각화가 인간의 시각적 인지범위(책상의 경우는 촉각적tactile 지각범위도 포함하지만)를 포함하면서도 또 넘어설 수 있기 때문이고, 그래서 '정지'된 시간, 내지 '죽은'^^ 시간이라는, 일종의 은유?가 될 수 있는게 아닌가 싶슴다.
근데 뷰샘 그 글들은 언제, 어디서 볼 수 잇나염? ㅎ ^^;;
아타김 기사 함 읽어볼께요. long exposure도 어떻게든 순간을 고정포착하는 그림같은 사진에 시간경과가 중첩되게 하는 방식이라고 보는데 어느정도 시간성이 내재한 거라는 데에 동의함다.
은유와 환유를 설명하는 언어학(야콥슨), 은유-환유를 들여온 정신분석학(사실 프로이트도 이미. 대표적으로는 라캉)에 제 사고가 넘 제한된건지 은유라는 개념이 좀 헷갈리는...
갠적으로는 살가두 보다는 김아타의 사진이 훨씬 더 좋고 아마 사진이라는 분야?장르?에 대해 기여하는 바도 더 크리라 생각합니다.
글고 공도리잠늠이 상식?적인 은유의 정의 말고 그런 인문학적 정의를 알아서 썼을^^;;리는 물론 업고요...제가 쓴 맥락은 분석철학자 데이빗슨Davidson의 맥락인데, 요컨데 은유가 뭔가를 깨닫게appreciate하는 '기능'은 있지만 (분석철학적^^) '의미'는 없다는 겁니다. 물론 넬슨 굿맨 같은 이(잘 아시져?^^;;)는 이 주류와는 사뭇 다른 견해지만요.
지는 그럼에도 그런 겉보기와는 달리 사뭇 비슷할수도 있다, 비슷한데는 없나, 계속 찝적거려보는 중입니다. 물론 흔히들 하는 말로 달이냐 손가락이냐 걍 (말씀하시는 사람들 류의) 문학적 내지 대륙철학적 입장(달?^^)을 골라잡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글케 달라야 할 이유가 엄따..면서 미련인지 뭔지 붙들고 늘어져보는 것이지요(공도리으 한게...ㅋ^^;;). 그런점에서 굿맨의 (단순히)지칭이 아니라 지칭의 구조랄찌 '복잡한 지칭multiple and complex reference'개념은 아주 잼잇다고 생각함미다. 저같으면 좀 형용모순이긴 하지만 '의도하지 않은?비지향적?지칭'..이라 일단 이름붙여본 다음 쪼물락거릴 듯 함다. ^^;;;